들어가며

봄이다. 포켓몬 챔피언스가 나왔다. 게임은 흥행했다. 곧 세계 대회 예선도 열린다. 온라인으로 열리는 <글로벌 챌린지 2026 I> 대회의 한국 거주자 상위 64명은 코엑스에서 현장 대회를 거쳐 세계 대회의 출전권을 놓고 다툰다. 16강 안에 들면 출전권이 생긴다. 4강 안에 들면 미국에 가거나 묵는 돈을 일부 보전해 준다. 우승하면 실질 공짜로 초청된다.
대회까지 1주 남았다. 쓸 파티는 정해지지 않았다. 랭크배틀 레이팅은 1800대를 맴돈다. 예전에는 그 정도면 탑 랭커였지만 시스템이 바뀐 지금은 2200 중반대를 넘어야 그걸 논해볼 수 있다. 여전히 존경해 마지않는, 파치리스로 유명한 그분의 더블배틀 방송은 수천 명이 본다. 그 중 몇 명이 대회에 참여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 더블배틀 인구가 메말라 있던 스칼렛/바이올렛 때처럼, 승-패 차이가 2게임만 되어도 다음 스테이지를 노릴 수 있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보여진다.
아마 이대로 가면 상위 64명에 들어가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지금의 나에게 대회 기간동안 하루에 15판, 사흘에 45판을 소화할 에너지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가끔 괴상한 상상을 한다. 어떻게 ‘잘 해서’ 64명 안에 들어가고, 코엑스에서 64강과 32강 상대를 ‘잘 만나서’ 16강 안에만 딱 안착하고, 그 다음에는 ‘다시 없을지도 모를 월드 챔피언십의 공기’와 ‘미국 원정 예상 총경비 500만원’ 사이에서 사흘밤낮을 고민하는 상상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지금 파티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현장 대회는 3판 2선승이다. 15년 포켓몬 인생에서 3판 2선승은 한 판도 안 해봤다. 15년이라고 해도 밀도 있게 배틀을 해 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상상을 하는 걸까? 아마 3년 전에 나름 열심히 해서 최종 예선에서 5승 5패를 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최종 예선이 오프라인이 아니었다. 3판 2선승이 아니었다. 딱 온라인 단판제 10판의 성적으로 150명 중 상위 16명을 세계 대회로 보내줬다. 개최지는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이 아니었다. 요코하마였다. 실력과 운이 조금 더 있었다면 7승 3패로 출전권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상위 유저들은 실력을 요행이 뒤엎을 수 있는 대회 방식에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에게는 그때가 ‘포켓몬 월드챔피언십 공기 마시기’라는, 인생에서 중간 정도로 중요했던 목표에 제일 근접했던 시기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3년 전 요코하마로 가지 못한 것은 천추지한으로 남았다. 어떻게든 공기라도 마시러 가려고 입장권 추첨에 참여했지만 3차까지 모두 떨어졌다. 공항과 요코하마 사이, 애매한 곳에 잡은 숙박은 취소했다.
왜 3년 전 일에 이렇게 에너지를 소모할까?

파티 찾고 랭크나 돌려야 할 시간에, 별 것도 아닌 3년 전 일에 집착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이 내가 봐도 보기 좋지는 않다. 하지만 분노하는 이유는 명확하고, 이 감정을 굳이 잊거나 애써 부정할 생각도 없다.
내가 이렇게 발버둥쳐도 얻지 못한 것을 너무나 쉽게 땅바닥에 던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 사람들이 마치 한강 다리에서 무수한 지폐를 보란듯이 강물 위로 뿌리는 사람같이 보였다.
실은 그 해의 대회 운영은 멀쩡하지 않았다. 최종 예선은 사실 두 번 열렸다. 첫 번째 예선은 같은 사람과 3~4연속으로 매칭되는 황당한 버그로 인해 모든 결과가 무로 돌아갔다. 그 속에서 성적을 남긴 사람도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위에 쓴 대로 상위권 유저는 운의 비중이 높은 대회 형식에 분노했다.
당시 상위 4명은 세계 대회에서의 시드와 여행비 지원을 받았다. 다만 포켓몬코리아는 그래도 대회를 하는 티를 내고 싶었던 것인지, 닌텐도 스위치 본체를 걸고 스튜디오에 4명을 불러 대회를 진행한 다음 그걸 유튜브로 송출할 예정이었다. 그럴… 예정이었다.
곧 대회 1위 입상자가 실격된다는 공지가 올라온다. 포켓몬코리아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스튜디오로 갈 예정이었던 2~5위 입상자들은 그를 위해 일치단결해 모든 포켓몬의 기술배치를 손가락흔들기 5개와 희망사항 1개로 통일하는 보이콧을 실행한다. 처음에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응원했는지, 아니면 지금과 같이 분노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1위 입상자의 에딧 포켓몬 사용을 누군가 제보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유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제보자의 신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보여진다. 어떤 명분을 들이대도 내 눈에는 사기꾼을 수호하기 위한 보이콧으로 보였다.
우리 열사님
포켓몬코리아는 보이콧을 진행한 2~5위 입상자들도 승부 조작(4명의 파티를 동일하게 만든 것을 그렇게 해석한 것 같다)과 데이터 조작을 이유로 실격으로 처리하고 이들을 향후 대회에서 영구적으로 제명했다.
차순위자 구제도 없었다. 스위치를 건 ‘보너스’ 대회는 취소되었다. 참가 슬롯 자체가 5자리 삭제되었고, 2023년에 시드를 받은 이는 0명이 되었다. 나머지 11명은 자비로 요코하마로 향해 토너먼트 표의 뿌리 끝부터 힘겹게 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실격된 이들은 즉시 반발했다. 분명 그들은 다른 곳에서는 실격당할 각오가 있었다고 밝혔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불안했던 것일까? 특히 그 중 한 명은 영어로 긴 내용의 성명문까지 작성한다. ‘그들이 우리를 아무 이유도 없이 실격시켰다’는 명백히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다.
평소 트위터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그의 발언은 빠르게 영어권의 지지를 받았다. 보이콧용으로 준비된 손가락흔들기 파티마저 에딧 포켓몬으로 도배되었다고 지적하는 영어권 트윗도 있었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는 거센 반발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시위는 100% 합법일 수 없습니다.’
이딴 궤변이 오가는 동안 한국에서는 보이콧한 이들의 에딧 의혹이 도마에 오르며 여론이 서서히 돌아선다. 그 와중에도 이전 면식이 있던, 지금도 그럭저럭 유명한 사람은 어떻게든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애쓴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바깥쪽 사람들이 배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유저들에게 불리한 발언을 많이 해서 요즘 내가 예민하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씬이 발전하기 원한다면 이런 상황을 알아달라.’
시원찮은 성적이었지만 나도 그 대회의 참가자였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이 상위 16명 안에 들지 못했다. 그 사람에게 외부인과 내부인의 경계는 ‘이 투쟁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는지’로 갈리는 성싶었다.
결말
영어로 장문의 성명문을 썼던 그 유저는 후일,


이 2개의 트윗만으로, ‘시위’에 감명받은 영어권 유저에게 요코하마에서 대회를 관전할 수 있는 표를 공짜로 얻어낸다. (출전권을 획득하거나 추첨에서 당첨된 이에게는 2장의 표가 주어졌다.) 내가 3번의 티켓팅 추첨에서 떨어지는 동안.
한강에다 돈을 뿌리는 행동에서 정의감보다 분노를 먼저 느낀 사람은 아무래도 나뿐인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그걸 정의로운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후원했다.
‘7승 3패를 가볍게 할 게임 실력‘과 ‘중요한 게임에서 풀죽음을 뽑지 않거나, 또는 티켓팅에서 당첨되는 정도의 운‘, ‘위급할 때 티켓 한 장 구해줄 인맥‘, 그리고 ‘그런 일을 일으키고도 지금까지 철면피를 깔고 활동하는 뻔뻔함‘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나의 끔찍한 패배였다.
마치며

그 때 느꼈던 감정을 회고하기 위해 내 예전 노션에 있던 메모를 뒤졌다. 거기엔 확실히 내가 분노에 차서 쓴 각종 타임라인과 아카이브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개최지와 일정이 발표되자 급하게 노션에 짠 요코하마 일정 초안도 있었다. 3년 전의 나는 간절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과거의 나는 진심으로 대회를 준비했던 모양이다. 대회 당일은 물론이고 대회 연습 때도 캡쳐보드로 뜬 동영상을 복기하며 한 판 한 판을 짚어본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분노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이어지는지 내 나름대로 고찰해보려고 했다. 소모적인 일일 것이고, 당장 해야 할 대회 준비 또는 대회 그 자체에서 도망가는 일임을 각오했다. 질문에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내가 그런 성격인 것이다. 5년 후에도 난 이 일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열심히 준비하고 복기했던 기록을 보니 마냥 화만 느낀 시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름 진지하고 재미있게 게임에 임하던 순간이 분명 있었다. 나중에 찾아온 분노가 다 덮어버리고 현재는 그것만 남아버린 것이다.
분명 23시쯤부터 글을 쓰고 있었는데 벌써 2시가 넘었다. 오늘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대회 준비 기록을 누워서 읽으면서 잠에 들어야겠다.
